오이카와 토오루. 그 찬란한 사람을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쪽의 코트에 서있을 때는 몰랐던 이 차가움.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결국 TV를 꺼버리고 말았다. 새까맣게 죽은 화면이 집어먹은 자신의 얼굴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너무도 추했다.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그건 오만이었다.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옆에 있었던 존재에 대한 오만. 내가 저 사람을 제일 잘 안다는 오만. 그리고 멍청함.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내렸다. 너는 승부욕이 강했다. 너는 항상 정상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혼자 서있는 정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천천히 일어나 과거의 흔적을 마주했다. 짙은 푸른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키타이지의 유니폼, 새하얀 색과 민트색이 뒤섞인 유니폼.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시간들을 그는 한없이 곱씹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너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스파이커니까 보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네가 걱정이었다. 말려줄 사람도 없는데 대중도 없어 오버워크를 하다가 부상을 입으면 어쩌지. 또 천재에 대한 압박감으로 곁에 있는 것들을 못 보면 어쩌지.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온 바닥에 널려있는 회색 종잇조각들을 짓밟았다.
아아, 오이카와.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조금씩 따뜻해지는 물속에 있는 개구리는 그 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환하게 웃고 있는 회색 종이 속의 남자를 손끝으로 쓸었다.
“내가 멍청했어.”
그래, 내가 멍청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친애하는 나의 벗이여.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오연히 돌아서며 빛나는 갈빛 눈으로 내뱉는,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충만해지던 그 말을.
“믿고 있어…너희들.”
다시 한 번 불러주오. 그대의 입으로, 나의 이름을.
손에서 놓아 버린 지 한참. 더는 잡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그리웠다. 아직도 귓가에 달라붙어있는 그 목소리가, 그 갈빛 눈에 비치는 이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 한마디가 너무도 간절했다.
이제는 들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그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