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Beautiful nightmare
따뜻한 달빛이 스미는 방안. 그 속에 마지막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홀로 감내하고 있었다. 그것은 원죄. 그것은 결코 벗어서는 안될 죄악.
투둑-
선홍빛 핏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어가는 여인이 아이의 눈속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대리석의 냉기에 묶인 아이는 홀로 떨었다. 여인은 웃었다. 목덜미에 드리운 사신의 손길을 느끼며, 그것은 여인에게 있어 달콤한 연인의 애무보다도 달콤했으리라. 여인은 그것으로, 죽음을 택함으로 죄악의 구렁텅이를 기어올랐다. 여인의 영혼이 여인의 껍데기를 벗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이를 보았다. 죄악의 덩어리. 그녀를 오랜시간 죄책감속에서 울부짖게한 원인이였다. 아이는 여인의 모습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여인은 미소지으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여인은 죽음이라는 도구로서 구원받았다.
아이는 소녀가 되고 여인이 되었다. 시간은 가차없이 어미의 죽음을 눈에 담은 소녀를 여인으로 만들었다. 아이는 소녀를 지나 여인이 되는 순간까지 망막에 새겨진 어미의 죽음을 곱씹었다. 여인이 된 아이는 홀로 감내하고 있었다. 어미가 남긴 마지막 유산. 원죄의 덩어리. 그녀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굴레. 그것은 자신이였으며, 벗어날 수도, 벗어나도 안되는 죄악의 굴레.
꿈속에서 나타나는 어미는 끝없이 속삭였다. 태생부터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것. 살아서는 안되는 독극물. 몇명의 인생을 부셔버린 악마의 씨앗. 최후까지 벗어나선 안될 악마의 손길 속에서 발버둥 쳐야할 괴물.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파고드는 그 속삭임은 족쇄가 되어 구속했다. 어릴적 엉덩이로부터 전해지던 대리석의 냉기처럼, 그것은 벗어날수 없는 것이였다. 피부가 진물이 날정도로 문질러도 벗어날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 그것은 낙인과도 같이 인생에 새겨져 있었다.
너무도 사랑하여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던 남자의 씨앗이며,
너무도 행복해야할 결혼식 전날 행복을 박탈당한 여인의 태를 빌어 숨을 쉬는,
여인이 된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짊어진 삶의 무게.
02. Bloody tears
천번 너를 사랑하고
천번 나는 상처받고
천번 너를 원망하고
천번 나를 비웃는다
헤어지자. 그리말한 연인의 입이 너무도 미워.
너를 놓아줘야할거같아. 그리말한 연인의 입이 너무도 가증스러워.
더 좋은 사람이 생길거야. 그리말한 연인이 너무도 증오스러워.
나에게 너는 너무도 귀한 존재야. 나를 기만하는 그 말에도 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정말 미안해. 나의 심장을 옥죄는 그 한마디가 나를 미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사랑을 한다.
눈앞에서 스쳐지나가는 연인.
어제도 나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였거늘 어찌 그리도 매정한가.
그의 팔에 매달린것은 내가 아닌 다른 여인.
그의 눈에 담긴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여인.
그와 발맞추어 걷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여인.
그로하야 나는 오늘도 상처를 받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득한 것은 너와 나눈 추억의 파편들.
손을 뻗어 닿는 모든 것은 너가 선물한 사랑의 파편들.
언제 부서졌는지 모를 너를 향한 나의 신뢰.
언제 망가졌는지 모를 누군가를 위한 나의 마음.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하지 못할 나의 정신.
그럼으로 나는 오늘도 너를 원망한다.
내가 뭘 잘못한걸까. 나는 고민한다.
내가 좀 더 잘했다면 그가 떠나지 않았을까. 나는 고뇌한다.
내가 좀더 아름다웠다면 그가 곁에 남아주었을까.
나는 어리석은 질문을 되뇌인다.
내가 내가 내가. 나를 메우는 그 의미없는 물음에 나의 마음은 부서진다.
왜 왜 왜. 홀로 자책하는 나의 정신은 산산조각나 나를 헤집는다.
이리하여도 너를 버리지 못하는 나는 나를 오늘도 비웃는다.
마음의 바닥에 고인 눈물이 절망을 담는다.
정신의 바닥에 고인 눈물이 핏방울을 담는다.
뺨을 적시는 눈물이 나의 영혼을 담는다.
03. Damaged roses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것은 없노라. 네잎클로버조차 상처를 딛고 일어나 행운을 거머쥔 것이니.
그녀는 숨막힐거같이 아름답고, 숨막할거같이 고귀했다. 유명하고 지체높은 귀족가의 여식. 천상의 여신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아름다운 외모. 신이 내린 듯 들은 자는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목소리. 인간이 올라가지 못하리라 단정지어진 음역대를 넘나드는 목소리. 그리고 다정하고 든든한 그녀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약혼자까지.
붉은 장미로 칭해지는 아름다운 그녀의 추락은 순식간이였다.
그녀의 약혼자를 사랑한 여인. 자신과는 달리 아름다우며 사회적으로 저 높이 있는 그녀가 자신의 연인을 협박하여 그녀의 약혼자로 삼았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여인이 있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래서 스스로를 대중에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던 여인은 쉽게 위험에 노출되었다. 망상에 사로잡힌 여인이 휘두른 칼을 피하다 입은 부상. 그리고 악화. 절망. 마지막으로 도달한 것은 나락.
그녀는 찬란했던 옛 영광에 파묻혔다.
그녀가 더이상 자신과 노래하지 못할 지라도 사랑한다고 고백한 약혼자. 홀로 과거에 사로잡혔던 그녀는 그 맹세를 믿지 못했다. 빼앗길것이다. 처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여인은 벗어나는 방법을 몰랐다. 사람들의 안타까운, 그래서 슬픈 눈길을 그녀는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동정이라 오인하고 스스로를 학대했다. 회복되리라 예상되던 목은 계속되는 학대에 악화되어가고 그녀는 초췌해져만 갔다.
화려한 장미는 상처입은 채로 곪아들어갔다.
사려깊던, 그래서 그녀를 믿던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상태를 눈치 챘을때는 모든것이 끝난 후였다. 그녀는 조용히 약혼자를 살해하고 자신의 별장에 보관했다. 그녀는 그렇게 썩어들어갔다. 죽은 약혼자의 곁에 누워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수일뒤 별장의 문을 강제로 연 그녀의 부모와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썩어문드러진 장미가 가득한 침대위에 누워 구더기가 기어가는 약혼자의 시체곁에 평화로이 누운 그녀를 발견했다.
화려했던 장미는 그렇게 상처입었다.
04. Heavenly demonic
울부짖으나 빛나는 악마와 미소짓나 비천한 천사여. 죽음으로 말미암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오. 최후의 순간까지 나는 빛을 갈구했으나 나는 어둠속에 잠긴 비련한 자이니.
대지로난 시커먼 구덩이가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탐욕스레 집어삼켰다. 자상하고 따뜻하며 베풀 줄 알고 현명하던 아름답고 빛나던 나의 아내도, 어리광이 심하지만 애교넘치고 사랑을 베풀 줄 알던 제 어미를 닮은 딸아이도.
힘내요.당신이 이러길 그녀들이 바라지 않을거예요.
위로. 동정. 외면.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그 짜증나기 그지없는 것. 아내가, 딸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이 삶은. 아내를 만남으로 멈춰있던 시계가 돌아갔고, 딸아이가 이 세상에 숨쉼으로 세상은 빛을 되찾았기에. 둘이 사라진 세상은 엉망으로 부서져있었다. 그리고 폐허와도 같이 부서진 세상은 어느누구의 손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이겨내요.산 사람은 살아야-
피가 마룻바닥을 적셨다. 아내가 싫어할텐데-라는 생각은 한순간 아무런 가치도 없는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내와 비슷한 머리색, 하지만 전혀 다른 손길. 아내의 따뜻함이 결여된 그저 아무런 가치도 둘 수 없는 날파리같이 무감하던 손길. 피가 마룻바닥에 검게 달라붙었다.
돌아와줘, 나의 빛과도 같던 여인아, 나의 생명과도 같던 딸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깃들길-언젠가 아내가 가져다 놓은 천사상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피가 달라붙은 천사상의 날개가 기괴했다. 날개는 거뭇하고 얼굴은 자애로웠다.마치. 타락했으나 신을 따르는 타락천사와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