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garden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무도 모르게 씨앗을 뿌리고, 싹이 돋으며 순식간에 피어오른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시들어버리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덧없는 감정을, 하여 사랑이라 부른다.

 

 

그래서 자수하러 온 거라고?”

쿠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이프 중에서도 꽤나 거물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중요도가 떨어지는 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중요한 사건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백업하거나 도주로를 확보해주는 일을 하는 쪽인 자신 때문에 서장까지 나올 줄은 몰랐기에 그녀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왜요?”

쿠나는 질문을 한 상대를 찾아 눈을 살짝 굴렸다. 몇 년 전부터 이쪽 일마다 끼어들어 훼방을 놓고 있는 회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자신은 요 근래 얌전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왜 이런 거물들 사이에서 자수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걸까. 쿠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더는 싫으니까요.”

단정한 답에 나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뭐가요?”

살인이.”

, 나이프에 있으면서?”

누군가의 물음이 그녀를 후려쳤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꽤 되었습니다만.”

그녀의 말에 천천히 지난 사건들을 되짚어가던 다나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봤지만 얼어 죽었다거나 얼음에 당해 죽은 사람은 사건을 거듭할수록 줄어들더니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졌었다.

좋아. 믿지. 하지만 그쪽이 가져다준 정보를 모두 신뢰할 수는 없어.”

쿠나는 그들의 불신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자수하러 왔다지만 그녀는 엄연히 적이었다. 적이 물어다 준 정보를 좋다고 다 집어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으니 그들의 조심성을 쿠나는 인정했다. 쿠나는 그녀가 술술 토해낸 정보를 그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이들은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원래 그랬다는 듯 종종 던져지는 질문에 답하며 그저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것을 나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후회해요?”

무엇을 말하는 거죠?”

나이프가 된 것.”

아니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펫숍에 끌려갔던 날, 피에 젖은 채로 오르카를 만났던 그 날. 쿠나의 생에서 그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날이니. 그날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술렁였다. 갈 길을 잃은 풍랑 속의 작은 배처럼.

쿠나에게 오르카를 따라 나이프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쿠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이었다. 나이프가 어떤 일을 하는 집단인지 둘째로 치고. 그것이 그녀가 나이프에 소속되면서 저지른 수많은 죄를 정당화하거나 없던 일로 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고, 허무하게 아버지를 잃고 일그러지던 그녀의 세상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그저 그 인연을 만들어준, 그저 소속되었다는 것만큼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래, 그녀는 그녀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나이프의 일원으로서 저지른, 그리고 외면한 수많은 범죄로 인한 죄악감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해서 그녀가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니.

 

그런데 자수하러 왔다고요?”

나가의 물음에 쿠나는 눈을 깜박였다.

별개의 문제니까요, 그 두 가지는.”

더는 답해주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무는 쿠나에 나가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엇이 저 사람을 고고하게 만들었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쿠나는 그 얼굴을 잘 알았다. 언젠가 그녀가 지었을, 그리고 보았던 표정. 하지만 그녀는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 침묵했을 뿐.

 

스푼은 능력이 출중한 집단이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그러모은 정보에 내부자인 쿠나가 가져온 정보를 더하자 그들은 금방 커다란 줄기를 잡아냈다. 그 즈음해서 그녀에게는 작은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녀가 가져온 정보들의 가치와,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처벌을 받을 생각이라는 것을 대다수의 스푼이 인정했기에.

이런 작은 신뢰의 기반에는 쿠나에 대한 관찰 결과가 있었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고 살인에 대해 무딘 감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통의 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진심으로 죽음에 무뎌져가는 자신을 경계하고 혐오하고 있었다. 처음 자수하겠답시고 나타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은 언제나 일관성이 있었다. 방금 전, 난데없이 쿠나가 사라져버리기 전까지는.

 

 

쿠나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죽어버린 오르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걸까. 쿠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색이 다른 쿠나의 두 눈에 그늘이 내렸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 가득 들어차는 것은 오르카였으나 오르카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을 가득 메우는 것은 지나온 시간들.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는 항상 오르카가 있었다. 쿠나의 손이 천천히 오르카의 뺨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미약한 온기와 숨 쉬는 자의 움직임에 쿠나는 숨을 멈췄다.

살아있어?”

크게 떠진 쿠나의 두 눈이 가늘게 떨렸다.

 

어라, 쿠나씨는요?”

소파에 앉아 뭔가를 읽고 있던 혜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 요 앞에 산책한다고 나가던데요.”

? 앞에 없던데.”

그럴 리가요. 방금까지만 해도 이 앞에 있.”

설마…….”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던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혜나는 그것을 지켜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도망이라고?’

혜나는 읽던 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대충 내팽개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제공한 정보는 전부 진짜였고 거짓 하나 없었다. 작전에 끼어들진 못했지만 들려오는 말을 듣자 하니 습격한 그곳도 진짜였다고 하고. 그녀가 보이던 죄책감은 진짜였다. 초반이라면 모를까 이젠 그 죄를 어느 정도 탕감받을 테니 지은 죄에 비하면 한참 가벼운 처벌만 받고 나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점에 지금까지 해온 협조를 완전히 하늘로 날려버리는 도주를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대체 뭐지.’

혜나는 머리를 굴리면서 문을 열었다.

 

 

스푼 전체가 당황할 무렵, 쿠나는 자수를 결심하는 것보다 한참도 더 전에 차라리 잠적해볼까, 라는 생각에 구해놨던 집에 들어섰다. 쿠나는 오르카를 내려놓으려다 말고 그녀의 발걸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먼지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 먼지 구덩이 속에 오르카를 두었다가는 회복하기도 전에 먼지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하아.”

쿠나는 집 밖에 오르카를 조심스럽게 놓은 후, 집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몽땅 열었다. 일단 방 하나를 치운 후에 오르카를 들여놓고 대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온 집안을 헤집으며 청소를 마친 쿠나는 자신이 사다 놨는지 기억도 못 했던 약과 붕대 따위의 치 료도구들을 훑어보았다. 구급상자 속에 있었다지만 먼지 구덩이 같은 구급상자의 껍데기 때문에 찝찝해 깔끔하게 소독한 도구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쿠나는 여전히 얇은 숨을 내쉬고 있는 오르카를 가만히 보다 그의 상처를 들췄다.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와 대충 얼려두었던 상처를 녹이고 소독약을 쏟아부었다. 부글거리는 상처가 지독하게 아파 보였지만 쿠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밀봉을 뜯어 꺼낸 거즈로 상처를 여러 차례 닦아냈다. 검붉은 피보다 붉은 피가 더 많이 배어 나오자 쿠나는 지혈제라고 적힌 것을 상처에 꼼꼼히 뿌리고 압박붕대로 강하게 감았다. 병원에 데려간다면 상처를 꿰매 줄 테지만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직접 하자니 자신은 그럴 재주가 없었다. 괜히 흉내 냈다가 상태만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르니 이쯤이 제일 적당했다. 쿠나는 상처를 보는 동안 작은 미동도 없던 오르카의 코밑에 손을 댔다. 손끝을 간질이는 약한 숨결에 쿠나는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쯤 스푼은 난리가 났겠지.’

쿠나는 허공으로 날아가다 못해 바스러진 자수의 기회에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쩌자고 자신은 이 사람을 구해온 걸까. 쿠나는 가만히 손을 심장 어림에 올렸다. 쿵쿵,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은 더 이상 그를 보고 거칠게 뛰지 않는데.

베여버린 습관인가.”

쿠나는 가슴 위에 놓인 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 손에 묻은, 채 닦이지 못한 붉은 것들을 다시 닦아내며 자조했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머리와 심장과는 달리 오랫동안 그를 향하고 있던 몸은 아직도 그를 그리고 있었던 걸까.

끝까지 멍청하긴.”

 

 

쿠나가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벗어날 즈음, 오르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기억에 남은 것은, 자수하겠다며 자신과 싸운 후 스푼으로 가버렸던 쿠나의 은빛이었다. 그런 쿠나에게서 자신은 메두사를 떠올렸을 뿐이지만.

왜 구해 준거지.’

오르카는 몽롱한 가운데서도 격렬하게 흔들리던 그 순간의 쿠나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자신을 방치했다면, 혹은 스푼에게로 데려갔다면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나이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 터였다. 오르카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오르카의 상처는 꽤 많이 나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는 되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 스푼은 공식적으로 나이프의 완전 격퇴를 선언했다. 나이프가 사라졌다곤 해도 여기저기서 빌런들이 고개를 쳐드는 것은 여전했지만.

오르카는 멍하니 뉴스를 보는 쿠나를 가만히 지켜보다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왠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둘이서만 이 집에 있게 된 이후, 쿠나는 버석거리던 이전에 비해 확실히 살아나 있었다. 환하게 웃기도 하고 장난도 치는 지금의 쿠나는, 무뚝뚝하고 고요하게 얼어붙어 있던 이전의 그녀가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사실은.

지금이 진짜겠지.’

오르카는 상처 위에 둘러진 붕대에 살짝 손을 얹었다. 느껴질 리 없는 쿠나의 온기가 손끝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일순 빠르게 뛰는 심장에 오르카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이 방안에 놓인 거울에 비쳤다.

 

똑똑.

오르카.”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전과는 달라진, 쿠나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달콤. 오르카는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생각을 멈췄다. 둘이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쿠나를 마주하면서 드는 이상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며 오르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디 자신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길 바라며.

, 쿠나님.”

붕대 갈고 식사할 시간이에요.”

오르카는 여전히 붉은 것 같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직접 갈고 나가겠습니다, 먼저 식사하세요.”

? 알겠어요, 어서 나오세요.”

.”

오르카는 멀어지는 그녀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다 얼굴을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어쩌자고 나는.

 

오르카는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보려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쿠나가 동여매 주었던 붕대를 푸는 조심스러운 손길에는 아쉬움과 잔 떨림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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