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garden

츠키시마 삼남매의 장녀이자 츠키시마 가의 둘째인 치카에게 있어서 배구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저 오빠인 아키테루가 정말, 아주 많이 마음에 들어 하는 운동, 딱 그 정도의 의미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호감도, 그렇다고 비호감도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은 배구가 밉기도 했다. 항상 함께 놀아주고 마주 봐주던, 그녀가 좋아하는 밝은 미소를 지어주던 오빠를 빼앗아갔으니까. 하지만 그 미움도 아주 잠시, 학교가 파한 후 부활동까지 끝내느라 해가 질 무렵에서야 겨우 집에 온 아키테루가 피곤해하면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얼굴로 ‘오늘도 정말 끝내줬어!’라며 한껏 들떠서 그날 배구부에서 뭘 했는지 쏟아내듯 말해주는 것을 들을 때면 사랑하는 오빠를 저만큼이나 행복하게 해주는 배구가 정말 좋아지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막내인 케이는 변덕쟁이니 뭐니 부르긴 했지만 그 말에 그리 상처받지 않았다. 케이는 제 형인 아키테루를 아주 많이 따랐고 형이 좋아하는 배구에 대한 동경심도 가지고 있었다. 귀여운 막내의 아주 사소한 정도의 심통을 너그러이 이해해줄 아량이 그녀에게는 있었으니까.


“엄마, 나도 형처럼 배구 하고 싶어!”

“얘가 갑자기 무슨 말이람?”

“엄마!”

“안 돼. 조금 더 크면 하렴.”

역 앞의 화과자 전문점에서 사온 화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엄마와 케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치카는 그토록 좋아하는 화과자를 톡하고 접시위에 내려놓았다.

“어머, 치카. 왜 더 안 먹고?”

“배불러요.”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면서 답하는 치카의 모습에 츠키시마 여사는 난감한 미소를 흘렸다. 치카가 제 딴에는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그 어린 아이의 감정이 어른의, 그것도 엄마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저런 남매가 또 없다고, 저런 딸이면 아이 셋을 키울만하다며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딸이었다. 둘째면 위아래로 치여 손윗, 손아래 형제가 미워지기 마련인데도 오빠와 동생을 눈에 다 보일 정도로 좋아하는 딸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하고도 뻔했다. 배구에 오빠도 모자라 동생까지 빼앗기는 기분이겠지.

“그럼 찬장에 넣어둘 테니까 먹고 싶어지면 꺼내 먹으렴.”

“네.”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딸아이가 방으로 달음박질 쳤다.

“누나, 어디가?”

그제야 제 누나가 이상함을 눈치 챘는지, 아니면 간식시간이 끝나면 저와 놀아주던 누나가 기다려주기는커녕 혼자 어디 가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케이가 치카를 불렀다.

“…숙제해야해. 숙제 하고 나서 놀아줄게. 미안, 케이.”

치카의 말에 케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얼른 하고 와!”

답 없이 쪼르르 제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치카의 부드러운 갈빛 머리카락의 잔상을 츠키시마 여사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


“쳇.”

치카는 꼬물꼬물 가방에서 숙제를 꺼내 펼치면서 연신 입을 삐죽였다. 다들 배구만 좋아해. 배구가 미우면서도 밉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숙제를 해나가던 치카가 홧김에 마구 연필을 그어댔다. 거칠게 움직인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금방 팔이 아파와 연필을 던지듯 놓은 치카는 두 팔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해.”

팔에 눌린 소리가 우물우물 기어 내렸다.


제 몫의 간식을 다 먹은 케이가 쪼르르 누나의 방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막은 츠키시마 여사는 케이의 손에 책 한권을 들려주곤 조심스럽게 치카의 방문을 두드렸다.

“치카?”

부름에 답이 없는 딸에 그녀는 정말 난감했다. 항상 얌전하던 딸아이였기에 이런 고민은 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엄마야, 들어간다.”

딸아이의 방이라곤 해도 멋대로 들어가는 것은 곤란했기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책상 앞에 앉은 채로 고개만 돌리고 있는 치카에게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치카도 해볼래, 배구?”

오빠랑 같이.


*


“에?”

치카가요? 아키테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제나 방실방실 웃는 치카가 심통이라니, 뭔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설명에 아키테루는 옅은 신음을 뱉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 여동생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열에 아홉은 치카처럼 착한데다가 귀엽고 오빠를 좋아하기까지 하는 동생이 부럽다고 노래를 불러댔으니까.

“이번에 저 배구 관람하러 갈 때, 치카도 데려갈게요. 사실 치카는 한 번도 배구를 하는 것을 본적 없으니까요. 보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어머, 그럴래? 그럼 그날 엄마는 케이 데리고 쇼핑이나 다녀와야겠다.”


*


“오빠랑 둘이서?”

“응, 어때?”

“응! 준비하고 올게!”

쪼르르 제방으로 달려가는 치카의 뒷모습에 아키테루는 미안함에 뺨을 긁적였다. 항상 놀아주던 제가 배구에 빠진 후로는 딱히 치카와 뭔가를 한 적이 없으니까.

“오빠, 가자!”

반짝거리는 동생의 눈을 보면서 아키테루는 혼자 다짐했다. 치카가 배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자주 데리고 나가야지, 라고.


“저기서 경기 하는 거야?”

관람석 의자에 앉아서 이리저리 고개를 빼며 코트를 내려다보는 치카에게 아키테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 경기거든. 이거 보고 치카가 좋아하는 역 앞 화과자 가게에 갔다가 집에 가자.”

“응!”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아오는 치카의 손을 마주 잡으며 아키테루는 코트 안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공식 워밍업이 끝나고 선수들이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눴다. 처음 보는 경기에 긴장했는지 꽉 잡아오는 치카의 손을 단단히 잡아주면서 코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 아키테루의 얼굴을 힐끗거리던 치카는 입술을 삐죽이다 시선을 돌렸다. 얼마나 경기가 흘렀을까. 아키테루는 무료한 듯 경기를 바라보는 치카의 모습에 속으로 실패인가하고 중얼거렸다.


삑!


거칠게 체육관 안을 헤집은 호각소리에 빠르게 고개를 돌린 아키테루는 무슨 일인지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져있는 세터를 보곤 치카의 안색을 살폈다.

“츳, 저 세터 제대로 얼굴을 부딪쳤어. 이제 경기에 못 나오겠는데?”

“카라스노 벤치에 세터가 있던가?”

“있을 걸?”

뒤에서 오가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아키테루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가 나는 것을 봤으니 치카가 배구와 친해지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아키테루는 치카를 확인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홀린 듯 경기장을 바라보는 치카의 얼굴이었다.

“오, 보결 나오네.”

“저 녀석 누구야?”

“어디보자 우카이 영감네 손자 같은데? 이름이…우카이 케이신이였나?”


우카이 케이신. 그 이름을 입안에서 조심스럽게 굴리며 치카는 꼭 부여잡고 있던 아키테루의 손을 놓고 난간으로 다가갔다. 오빠의 손대신 난간을 꼭 부여잡고 코트 안의 사람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공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보결. 어려운 단어지만 얼마 전에 선생님이 설명해준 단어였다. 대신 하는 것. 오빠처럼 항상 경기에 나가는 사람도 아닐 텐데 어떻게 저렇게 선수들과 경기를 할 수 있을까. 그의 손을 스치듯 벗어난 공을 다른 사람이 내리친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편에 공이 들어가자 소름이 돋을 만큼 환호한다. 상대가 공격하면 방금까지의 환호성이 거짓말이라는 듯 진지하게 상대를 바라본다. 치카는 저 얼굴을 알았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의 얼굴. 치카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경기가 끝났을 때에야 치카는 흥분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나 할래! 나도 배구 할래!”

궁금해. 저 사람이 저렇게나 좋아하는 배구는 어떤 걸까. 치카는 코트 안에 서서 선수들과 환호하고 있는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도, 나도 갈 거야. 저 사람이 있는 학교.


*


“오빠, 나 화장실!”

아직도 흥분기가 남아있는 치카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아키테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있는 곳을 알려주곤 아키테루는 음료를 뽑기 위해 몸을 돌렸다. 뭐라도 마시게 해서 치카의 열을 식히려는 생각이었다.


볼일을 보고 손까지 꼼꼼하게 닦은 치카는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마주친 사람의 옷자락을 콱 움켜쥐었다.

“에?”

난데없이 잡힌 옷자락에 우카이는 고개를 돌렸다가 작은 꼬마가 저지를 붙들고 있는 것을 보곤 몸을 숙였다.

“무슨 일이니?”

“츠키시마 치카입니다!”

“엉? 아, 난 우카이 케이신이야. 그래서 무슨 ㅇ….”

“알아요! 멋졌어요!”

“엥?”

어린 소녀의 반짝거리는 호박색 눈에 비친 자신이 영 낯설었다.

“고, 고맙다?”

보결인 제가 이정도로 환영받는 일이 있던가. 어쩐지 심장 부근이 간질거렸다.

“치카!”

“앗! 오빠, 가! 정말, 정말 멋졌어요!”

제 할 말만 하고 가버린 어린 소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우카이는 머리를 긁으며 제 팀원들이 있을 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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