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뿅거리는 게임음이 귓가를 간질었다. 평화롭던 음악이 점점 급박하고 난폭하게 울리자 뿅뿅거리던 전자음도 더 급하고 난잡하게 울려퍼졌다. 연신 플라스틱 조각들이 맞부딪히며 소리 질렀고 결국 쿠로오는 벌떡 일어나 켄마의 게임기에 꽂혀있던 게임팩을 뽑아냈다. 삐로롱 하는 소리와 함께 게임오버가 뜨는 것도 아니고 픽하고 암전되는 액정에 켄마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
불만이 있음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켄마의 눈에 쿠로오는 게임팩을 뽑아낼 때의 박력따윈 어디로 갔는지 소심하게 찌그러진 간덩어리를 부여안고 말없이 교과서 더미를 가리켰다. 켄마의 눈이 그의 손을 따라 교과서 더미를 한번 훑고는 다시 쿠로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안 좋은 시점에 뽑았나.'
평소보다 더 흉흉한 소꿉친구의 눈에 쿠로오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딴청을 피웠다.
쿠로오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든 말든 몇일동안 수십번 캐릭터를 갖은 방법으로 죽이고 다시 키우는 고생을 해가며 찾아낸 방법으로 최종 보스를 공략하던 켄마는 말로 내뱉는 것 조차 짜증나는 상황에 그저 인상만 찌푸렸다.
'한 대…….'
게임 클리어가 멀었다면 모를까, 한 대를 못 때려 앤딩을 보지 못한 현실에 짜증이 치밀었다.
점점 흉흉해지는 방 안의 공기가 답답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아지자 쿠로오는 조용히 게임팩을 켄마에게 내밀었다. 빠르게 채가는 켄마를 보던 쿠로오는 여전히 골이 난 것을 눈치채고 연신 눈을 굴렸다.
"케……."
쿠로오의 말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켄마가 몸을 돌려 가방을 집어들자 쿠로오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켄마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응?"
달래는 듯한 말투에 켄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쿠로오."
쿠로라고 부르는 평소와는 달리 딱딱한 부름에 쿠로오는 마른 침을 삼키곤 켄마를 바라보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손이 바닥을 가리키자 쿠로오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헤어지고 싶은거?"
쿠로오는 머리를 후려치는 말에 놀라 켄마를 붙잡았다.
"그럴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 켄마가 쿠로오의 두 뺨을 잡고 천천히 이마를 마주 대었다. 살랑거리는 켄마의 머리카락이 드리우며 그늘을 만들자 작게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빛에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근데 왜 팩을 뽑아."
"……."
아무 말도 못하는 쿠로오가 가만히 있자 켄마가 쿠로오의 입술에 스치듯 입술을 마주쳤다.
"하지마."
거실을 메우는 달콤한 공기에 쿠로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