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서, 삐걱거리는 시간을 지나서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았을 때. 거기에는 깊고 깊은 낭떠러지가 흉흉하게 입을 벌리고 내가, 혹은 네가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쌓아온 시간과 지나온 순간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 낭떠러지를 향해 내달리고 말았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
서툰 혀가 뒤얽힌다. 여자애들이 말하곤 하는 황홀하다던가 달콤하다던가 같은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저 질척거리는 살덩어리가 입안에서 뒤얽히고 입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상대의 숨이 기괴했다.
“…으…으음….”
짓뭉개진 신음과 옅은 신음이 뒤섞이고 결국 떨어진 입술 사이로 은빛 선이 이어지다 끊어진다.
“하아…하아….”
서투름에 모자랐던 숨을 채우기 급급해 번들거리는 입술을 한 채로 숨을 들이키는 것에 정신이 없는 가케야마의 입술을 대강 손으로 훔쳐주자 그 눈동자가 데구르륵 굴러 그를 담아왔다.
“집에 가자.”
미묘한 열기가 뒤얽힌 눈을 외면하며 가방을 집어 들자 뒤따라오는 시선에 목덜미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뭐가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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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알고 싶은 생각도, 알 길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속을 남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털어놓을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자신에게는 없는 열정적인 모습이 좋았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재능이 있음이 부러웠지만 질투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재능과 갈고닦은 노력이 만들어낸 사람을 꽤 오랫동안 봐왔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처럼 질투를 자신이 발전하는 거름으로 삼을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면했을지도 몰랐다.
*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다. 너도, 나도. 남중생들 사이에서 섬세하다는 것은 그저 둔하지 않다는 말일 뿐이었으니까. 그 녀석의 속이 어떻게 뒤엉키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녀석은 혼자였고 나는 자주 킨다이치와 다녔다. 그 녀석이 얼마나 초조했을지, 두려웠을지는 그 당시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미지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가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
그 녀석과의 배구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 우리는 별로 닮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하기를 좋아했고, 그 녀석은 불도저처럼 날뛰는 것을 좋아했다. 나의 천성은 그 녀석에게는 답답함 이었을 것이고 그 녀석의 열정 넘치는 몸짓은 내게는 벅찰 뿐이었다. 내가 그 녀석과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손을 잡고 앉아서 나누는 호흡과 입을 맞추며 나누는 서로의 향기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그 녀석이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
손안에 담긴 그 녀석의 중심이 뜨거웠다.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 기묘해서 가만히 내려다보자 코트 안에서의 그 오만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거친 호흡 사이로 섞여든 신음을 내뱉는 얼굴이 퍽이나 사랑스러웠다. 달래주듯이 가볍게 스치는 입술에도 필사적으로 입을 벌리며 쫓아오는 것에 슬쩍 손에 힘을 줬다.
“윽!”
구겨지는 미간에 살짝 입술을 내리누르며 천천히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손으로 매만지면서 슬쩍 선단을 긁어내리자 점점 급박하게 뱉어내는 신음을, 더 붉어지는 얼굴을 핥듯이 바라보았다. 아래가 뻐근해지는 것도 무시한 채 계속 매만져주자 결국 토해낸 하얀 액체로 얼룩진 손을 들어 그 녀석의 뺨을 매만졌다. 화를 내지도, 뭐라 하지도 않고 온몸에 남은 열기를 가라앉히느라 애쓰는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바지를 끌렀다.
*
“…….”
같은 학교로 진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귀자는 말도 없이 시작되었던 관계처럼 끝내자는 말도 없이 우리의 관계는 마침표를 찍었었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같은 지역구 내에서 진학하는 것이 틀림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인사도 없이 스쳐지나가자 급하게 돌아서는 그 녀석의 인기척을 느끼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끝나버려서 더 이어갈 수도 없는 관계. 시작도 끝도 고하지 않았으나 더 어찌할 수 없는 관계. 그게 바로 우리의 관계였으니까.
*
주머니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손을 넣어 꺼내자 반쯤 녹아 물렁해진 캐러멜이 딸려 나왔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포장을 열고 살짝 끈적해진, 그래서 과거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캐러멜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입안에 도는 캐러멜 맛이 씁쓸하고 입안에 옅게 도는 향이 진득거리며 혀뿌리에 들러붙는다. 있잖아, 만약에…정말 만약에. 다시 태어나 다음 생애가 되면 그걸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카게야마.
아니면 그건 그저, 시작과 끝을 규정하지 않았던 우리의 관계처럼 지나가버린 이름붙일 수 없는 과거의 무언가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