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변함이 없다. 나는 언제나 그려낼 수 있다. 너는 항상 그 곳에서,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내게 손내밀어줄 수 있는 그 거리에 있었다. 내가 벼랑위에 서서 너를 필요로 할때도 너는 거기 있었고, 내가 너의 존재를 잊었을 때도 너는 거기에 있었다.
그러니 영원히 함께하여주오, 내가 너의 얼굴을 영원히 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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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내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나의 머리는 나쁘지 않았다. 남들에게 조금, 아주 조금 재능이 뒤쳐졌지만 그것도 노력으로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를 몰아세우고 나를 닦달하면 그 끄트머리나마 잡을 수 있는 재능. 그리고 너는 그런 나를 적당히 멈춰 세울 줄 알았다. 숨이 가빠져도 가빠진지 모르는 나를 붙잡아 세우고 숨을 고르게 하고 다시 뛰어나갈 수 있도록. 너는 극명한 한계 속에서, 남을 돌아볼 줄 모르는 나를 옆에 두고서도 그럴 줄 알았다.
너는 그렇게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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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할 때도 그러했다. 너의 시간과 나의 순간이 마주해서 나의 순간이 너의 시간에, 너의 시간이 나의 순간에 스며들었던 그 순간에도 너는 그랬다. 그 순간 꽃피웠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스러져 휘날리고 달이 차고 기우는 그 길고도 짧은 순간마다 너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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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 그리고 잊어버린 사람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영원히 너를 모를 것이다. 너를 항상 보고 있으나 나의 머리는 더 이상 너를 담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너의 얼굴은, 봄고에서 지고 우리의 3년이 마침표를 찍던 날의 울음으로 가득하던 그 얼굴. 나는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너의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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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배구를 할 수 있고, 너는 나의 전담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서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을 너는 기억할 수 있고, 너는 내가 서있는 그 곳에, 바로 그 옆에 서 있어줄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순간에 그러하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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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습하는 고통에, 주변이 모두 얼굴이 빈 무언가로 가득 차 답답함에 울부짖을 때, 나는 너의, 익숙하디 익숙한 그 온기를 느낀다. 너는 거기에 있다. 내가 두려워하면 너는 내게 사랑을 건네고, 그 익숙한 것으로 나는 너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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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종종 너의 흐름을, 나의 흐름을 알 수 없음이 주는 공포에 허덕이면 너는 항상 내게 그 익숙한 온기를 건네주겠지.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비록 시간의 흐름에 목소리는 변화하였으나 언제나처럼 그 선명하던 애정을 담고 속삭여주겠지.
괜찮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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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소중한 조카를 구하는 대가로 사람을 잊었다. 나는 너를 남과 구별하지 못한다. 흐리멍텅한 너의 얼굴 위로 마지막, 그 겨울의 얼굴을 덧씌울 뿐.
너의 괜찮다는 그 한마디를 위안 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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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아하는, 네 마지막 기억의 나로도 괜찮아. 그렇게 있을게, 영원히. 오이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