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수년전의 남자는 아직도 기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버리듯 아이를 두고 갈 때는 언제고 또다시 유령같이 나타나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 증오스러웠다. 화를 토하지도 못하고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이.
“……예, 그러시지요.”
문 밖에서 움칠거리는 아이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아, 아이야. 나의 제자, 아니 나의 시간과도 같은 아이야.
℘
붉은 달이 요요히 그 빛을 뿌렸다. 그 오싹하고도 처연한 하늘 아래에 곧게 서있는 남자는 가만히 하늘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남자는 달에 눈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뒤에서 작게 들려오는 숨을 들이키는 소리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등을 곧게 펴고 당당히 앞을 보거ㄹ…….”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저 멀리 뛰어가는 소년의 발걸음소리가 그의 심장을 잔혹하게 난도질했다.
℘
티엔은 수년이 지났음에도 어젯밤의 일처럼 생생했다. 아비의 품에 안겨 그에게 찾아온 젖도 겨우 뗀 아주 작은 아이가 그의 품으로 옮겨와 울지도 않고 손을 움찔대던 그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뿐이 아니었다. 아이가 두 발로 서고, 그에게 걸어오던 순간도, 아이가 처음으로 뛰던 그 날도, 그리고 아이가 어설피 자신의 수련을 따라하던 날까지도. 평생 잊을 수나 있을까, 이 작고도 사랑스럽던, 그리고 아직도 사랑스러운 아이를. 달아오르려는 눈가를 식히기 위해 그는 눈을 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가 가신 달이 시리게 그의 눈에 틀어박혔다.
℘
제 아비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저를 돌아보는 아이가 아직도 사랑스러웠다.
“사부는, 사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아이의 눈을 바라보자 그에 비친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보였다. 어찌 아무렇지 않겠느냐. 그 어떤 사부가 제자를 떠나보내는데 멀쩡하겠느냐, 하랑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이 조각조각 바스러져 심장을 긁어내렸다.
“더, 더 잘할게요. 꾀도 안 부리고...!”
제 아비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와 처절하게 매달리는 아이를 끌어안고 그의 잘못이 아니라 말하고 싶었다. 아아, 하랑아.
“버리지마요, 사부.”
말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꺽꺽대는 아이를 품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사부!”
그의 심장을 옥죄는 눈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등을 곧게 펴고, 앞을 보거라. 결코 포기하지 말거라. 아쉽구나, 하랑아. 조심히, 조심히 가거라. 그리하여, 또 보자꾸나.”
어설피 드러낸 붉은 피가 아롱지는 말에 아이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부…….”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민 달은 아직도 요요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