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공기에 냉기가 감돌고 옷자락에 감싸인 몸이 잘게 떨렸다. 손끝은 차갑게 얼어갈 즈음, 겨울이 시작되었다. 심하지는 않지만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들이 몇몇 생겼고, 감기 기운이 감기가 되지 않게 하려는 사람들로 학교가 시끌시끌했다. 보건실을 담당하는 사가미 선생님은 기침하는 것이 보이거나 옷을 대충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감기에 걸리지 말라며 한소리를 했고 쿠누기 선생님은 댄스 레슨을 마칠 때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땀을 어서 닦고 옷을 제대로 입으라고 닦달하거나 성악 레슨마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셔 목을 보호하라며 잔소리를 했다. 쿠누기 선생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좀처럼 간섭하는 법이 없던 사가기 선생님의 잔소리에 1학년들은 당황했지만 이런 일을 2년, 혹은 3년이나 겪은 2학년과 3학년들은 조금 귀찮아하는 것이 티가 났지만 그들의 조언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덕분인지 아닌지 감기 환자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 건가 했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학교 유일의 여학생이자 36명이나 되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조언해주고 의상을 만들어 주던
2학년 A의 타치바나가 감기에 걸려 결석했다.
언제나 이른 시간에 등교하던 타치바나 유우카의 결석은 결코 조용하지 않은 유메노사키를 더욱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부재에 틱틱거리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그들의 성격이나 말투 상 부드러운 말이 나오지 않았을 뿐, 그 말의 내용은 ─누가 봐도─분명히 걱정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무려 결석까지 해야 할 정도로 나쁜 것이 분명한─ 그녀의 상태를 걱정했다. 선생님들은 그녀의 상태에 대한 질문에도 ─그녀가 비밀로 하길 원했다고 방문도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비밀이라 답하며 그들의 병문안을 막을 뿐, 딱히 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루는 괜찮았다. 걱정하긴 했지만 평소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던 그녀였던지라 묘한 기분의 허전함만 빼면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갔다. 이틀째가 되어서야 다들 조금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마다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편히 말을 걸기 어렵거나 조금 꺼려지는─ 선배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조언을 청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수번을 넘어가니 유우카의 부재가 턱없이 크게 느껴졌다. 얼마 뒤 있을 무대를 준비하는 그룹들은 ─유우카가 담당하고 있던 의상의 딜레이에─ 더 심각하게 그녀의 부재를 체감했다.
결국 삼일 만에 그들은 유우카의 상태를 확인할 사람을 하나 ─병문안을 허락하는 대신 선생님들이 내건 조건이었다.─ 보내기로 결심했다. 여러 사람이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적으로 정해진 대표는 스오우 츠카사. 그가 ─유우카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므로 그가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누군가의 말─을 특히나 중요하게 여긴 덕분이었다.
해서 그는 지금 유우카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엣?”
유우카는 손님이 왔다는 말과 함께 등장한 츠카사에 화들짝 놀라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혹시 내가 지금 헛것을 보나?!’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등장에 거칠게 움직이던 그녀는 열에 들뜬 몸으로 험하게 움직여버린 바람에 팽그르르 도는 눈앞이 아찔해 휘청거렸지만 어디로 넘어지기 전에 그녀를 붙잡는 손에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열 때문에 머리가 느리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조심해요-.”
누님. 익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자다운 목소리에 유우카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어어…. 츠카사?”
믿을 수 없다는 것 같은 그녀의 반응에 츠카사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몸은 괜찮습니까?”
정중한 도련님 말투에 유우카가 맑게 웃었다.
“괜찮은데…, 이렇게 와도 괜찮아?”
열에 붉어진 유우카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츠카사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지금 누님이 저를 걱정할 때입니까?”
심통이 나긴 했지만 조근조근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츠카사의 손길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옮을지도 몰라….”
“그건 누님이 걱정할 문제가 아닌데요.”
조심스럽게 유우카의 손을 붙잡은 츠카사가 따끈따끈한 그녀의 손에 옅은 한숨을 뱉어냈다.
“하지만, 너는 무대에 서야 한다구.”
유우카의 걱정에 츠카사는 빈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어서 괜찮아지는 것만 생각해요, 누님.”
“하하…. 응, 그래야지….”
흐려지는 그녀의 말에 츠카사가 얼굴을 그녀의 침대에 기댔다. 나란히, 같은 높이로 마주한 얼굴에 유우카가 옅게 웃자 츠카사도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나는 누님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으니까-.”
나른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