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는 천천히 메모리 박스의 끝에서 끝으로 유영했다. 이제는 외워버리고만, 그의 존재가 새겨진 끝에서 끝까지. 그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이 기억에 불과할지라도 그 목소리가, 그 움직임이 그 모든 것이…너무도 보고 싶었기에.
그리고 그저 그것만이…,
* * *
쾅!
거친 폭음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인류를 가장 빛나는 곳에서 끝이라고 말해도 모자라지 않을 곳까지 밀어 넣고도 모자라는지 어둠의 수하들은 이 음울히 빛나는 최후의 도시까지 밀려들어 왔다. 번영의 반등을 믿고 신뢰하며 그 순간이 오리라 믿는 자들이 수호자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싸우고 있었다.
비명. 고통. 상실.
그들은 수많은 고행을 양식 삼아 그렇게 싸우고 있었다. 지금의 시간으로부터 최소 수 세기는 흐른 후에 고스트로 인해서 되살아난 과거의 망령은,
“으아아!”
짓이겨지고 부서지는 파편들을 짓밟고 움직이고 있었다.
“아누비스! 혼자 더 들어가지 마!”
“젠장! 저 자식 또 아무것도 안 듣고 있어!”
와글거리는 소음이 그의 발을 잡아챘지만, 그는 그것을 뿌리치고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부터였지?
각성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푸른색에 가까운 백색의 피부가, 그 피부 위로 어른거리는 물결 혹은 안개와도 같은 어른거림이, 못마땅해하면서도 자신을 직시하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 홍채가 미치도록 눈에 밟힌 것이. 그의 존재 하나하나에 뛰지 않을 것이 분명한 기계의 몸뚱이가 뛰고 모든 감각이 그를 향했던 순간이.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눈앞의 적을 부숴버리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아누비스는 무엇인지 모를 물질이 그의 갑주에 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워록! 아누비스가 또 날뛰고 있어!”
“쫓아가! 혼자 가게 두지 마!”
“젠장, 아누비스!”
대체 왜 말린다는 말인가. 아누비스는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몸뚱이를 저주하고, 또 감사하며 땅을 박찼다. 소중한 것에게 ‘소중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완전히 앗아가 버린 저 존재들을 증오하고, 미워하고 부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퍼걱하는 파열음과 함께 또 하나의 군체가 기동력을 상실하고 땅 위를 나뒹굴었다. 아누비스는 그것을 짓밟아 완전히 부수고는 또 다른 군체를 향해 칼을 날렸다.
전투조차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 무엇보다 찬란하고, 그 무엇보다 든든하던 타이탄을 잃어버린 분노를 대체 어디에 풀어놓아야 한다는 말인가. 아누비스는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풀어놓지 못한 감정의 주인을 잃어버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날것 그대로의 분노를 풀어놓으며 날뛰는 것뿐이었다. 그것의 끝에 파멸만이 이를 드러내고 있다 할지라도.
영원히 잃어버린 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는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