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느리게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둥근 무언가를 제외하곤 온통 공허하고 어두울 뿐이라 천천히 둥근 것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하고도 작은 알.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어스름한 궁금증에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알 속에서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검은 마법사?’
그 존재가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그가 꾸고 있는 꿈이 궁금해졌다. 저토록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면 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알을 바라보자 그의 꿈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자, 머나먼 무언가처럼 보였던 그의 꿈이 한순간 성큼 다가와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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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과 비슷한 느낌의 세상. 생경하다기보다는 익숙한 그 풍경보다 더 의아한 것은, ‘검은’이라는 수식어에 맞지 않게 새하얗게 보이는 ‘검은 마법사’였다.
‘다른 사람인가?’
당연하게 드는 의문에 조금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자 빠르게 풍경이 움직였다. ‘오로라’라는 간판이 붙은 디저트 카페에, 그를 꼭 닮은 두 명의 아이. 평범하게 스쳐 지나가는 하루들. 유명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손님들은 디저트를 고르고 웃으면서 음료와 함께 그것을 먹었다.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과 그는 너무도 평범해 보여서 생경하기까지 했다. 추천해 주는 중인지 디저트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얼굴이 즐거워 보였다. 문득 들리는 ‘조언’과 ‘격려’는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정말 잘 어울려서,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그 카페 안의 평온이 대단해 보였다.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져서 조금 더 깊이 몸을 숙여 알을 바라보았다. 더욱더 가깝게 다가오는 그의 꿈이 기꺼이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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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울을 볼 법도 한데 그런 일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울을 볼 수 없었다. 그도 이것이 신경 쓰이기는 하는지 거울을 보려고 시도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가 부서진다던가, 방금까지 웃으면서 놀고 있던 아이가 넘어져서 울곤 했다. 자잘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다가와 그가 거울을 보는 것을 막으며 호들갑을 떨며 말하곤 했다. 거울을 보려 할 때마다 벌어지는 기묘한 일에 그의 의아스러움이 의심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티가 날 정도로 선명한 그 저지에 누군들 의심이 피어나지 않을까만은….
여하간 이런 자잘한 일만 제외한다면 카페는 정말 평온했다. 저들끼리 놀던 아이들이 오븐에서 디저트를 꺼내는 그에게 달려와,
“오로라가 뭐예요? 왜 카페 이름이 오로라예요?”
라고 묻기 전까지는. 그는 상냥하고 부드럽게 아이들에게 오로라를 설명하고 있었다. 밤하늘에 드리우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지. 그리고 그가 입을 열어,
“오로라를….”
라고 말하는 순간, 부드럽게 흘러가던 그의 목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그리고 흘러나와 귓가에 들리는 그의 생각.
‘내가 언제 오로라를 봤지? 어디서 본거지? 왜, 기억이….’
나지 않지? 의아스러움과 혼란이 뒤섞인 그의 생각이 짓뭉개져 윙윙거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함깨 진짜 오로라를 보러 가자.”
그의 혼란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색하지 않고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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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울을 보면 안 되는 걸까? 뭐가 나를 막고 있는 거지? 나는 왜 기억이 없는데도 확신하고 있던 걸까?’
작은 일에서 시작된 의심들이 얽히고설켜 그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디저트와 음료를 만들고,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이따금 피어오르는 의문에 그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거울을 마주했을 때. 나는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거울을. 그의 뒤에 있는 모든 풍경도 그 앞에 선 그도, 그 어느 것도 담아내지 않은 거울을. 마치, 이 거울이 비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그의 손이 거울에 닿는 순간, 그를 둘러싼 세상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거울 안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같이, 텅 비어버린 세계의 파편들이 아스라이 흩어지며 녹아내렸다.
그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지나간 후 남은 것은,
“역시, 꿈이었군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고요히 말하는 그.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다.
아쉬워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과 한 약속을 깨버린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문득 그의 눈가에 작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다시 본 그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곤 ‘누군가’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 할지라도, ‘나’뿐만 아니라 ‘곧 찾아올 그 사람’도 그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겁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만큼 차가운 말이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떨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바닥을 구른 말이 바스러지는 순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본 꿈도, 알도, 내가 본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닌 그저 한낱 꿈이라는 것처럼.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그 모든 꿈이 끝나있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아스라이 흩어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