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내가 그 안에 서있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서, 그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다. 단언컨대 그렇게 눈이 멀어버린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쿠로오 테츠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의 존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헛소리.”
“에엑?! 너무하네, 켄마!”
“애초에 계속 그 아이돌이 나오는 프로그램만 볼 거면 왜 부른 거야.”
“켄마, 너도 게임에서 벗어나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 필요가 있어!”
쓸모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꿉친구의 얼굴에 쿠션을 집어던진 켄마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신을 유혹했던 역 앞 가게의 애플파이는 다 먹은지 오래였다. 집에 가서 타이틀이나 마저 깨야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집에 갈 채비를 하는 켄마의 등 뒤로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러붙었다.
“내일 개학이니까 일찍 자. 또 게임 한다고 늦게 자지 말고.”
확인 ㅎ…. 쾅하고 닫히는 문소리에 허리께가 뚝 부러진 쿠로오의 목소리를 탈탈 털어낸 켄마는 슬쩍 닫힌 문을 확인하곤 게임기를 다시 켰다.
*
배구 바보, 요괴 고양이. 모 학교의 부엉이 엄마가 단언하는 말이었다. 제 자신도 그리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배구는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부분이었다. 배구에 비교할만한 것은 켄마 정도나 되어야 할까. 그렇게 자신의 배구 사랑을 내심 자랑스러워하던 쿠로오가 어린 시절 전대물에 푹 빠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게나 협박당하고 유혹당해도 무시하고 거부하던 음악 방송을 보게 된 이유는 그냥 운명. 그래, 그건 그냥 무슨 말을 붙여도 그렇게 될 일이었다. 정말, 아주 우연이었다. 신문에서 며칠 전부터 그렇게 광고해대던 국가대표 배구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TV를 켠 쿠로오가 마주한 것은 배구 경기가 아닌 음악방송이었다. 섹시한 바디도 눈에 들어 올만큼 훌륭했지만 그것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목소리가 쿠로오의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 아이돌의 소개를 내심 기다렸지만 소개는 무슨 남자 아이돌들이 단체로 우르르 몰려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만 깜박이던 쿠로오는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조작해 배구 경기를 틀었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조명이 부서져 반짝이는 백금발과 자신만만하던 아름다운 얼굴 때문에.
그렇게 쿠로오의 일상에 음악방송 청취가 끼어들어왔다. 목소리만 기억날 뿐 이름도 가사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으니 검색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몇 주나 허비하고 난 후에야 다시 쿠로오의 눈 앞에 등장한 그 아이돌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름도 아름다웠다. 멍하니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고 또 굴렸다. 불러도 상대는 듣지 못할 이름을 익숙해져 버릴 정도로. 그렇게 배구 바보의 일상에 아주 새로운, 전에 없던 것이 끼어들었다. 그의 일상에는 꼬박꼬박 그녀가 등장한 프로그램을 보는 쿠로오가 있었고 휴대폰은 그녀의 음악들로 가득 차올랐다. 성큼성큼 자라나는 마음은 어느새 배구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커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