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야 유
10월 10일
마가목 민감
멜론 포식
한걸음 앞. 조금만 더 빠르게, 조금만 더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받아냈을 공. 소년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리베로. 그것은 뒤를 받치는 자. 소년은 스스로가 짊어진 의무를 다하지 못한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분노했다. 모든 잘못은 그에게 있었다. 그가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기에 진거다. 소년의 팀원들을 안심하게 해주지 못한 자신이 팀의 패착이었다.
소년은 순수하게 분노했다. 잘못은 자신에게 있었는데, 어째서 당신이 꺾여버리는 건가. 설령 공이 블록에 부딪혀 우리의 코트에 떨어지는 것을 에이스가 걱정하게 만든, 두려워하게 만든 자신에게 잘못이 있었다. 리베로. 공격을 할 수 없고 공을 받아내서 팀원들의 공격이 끝없이 이어지게 해야 하는 존재. 그것을 해내지 못한 자신의 탓인데. 어째서 에이스가 부서져야 하는가. 소년은 인정할 수 없었다.
언제나 다정하던 둥지를 떠나 홀로 선 곳에서 소년은 생각했다. 스스로 결정짓지 못했다는 이유로, 에이스로서 활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너져버렸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싫어. 그럼 내가 연습하자. 몇 번이고 블록에 맞고 튕겨져 나온 공이라도 다시 올릴 수 있도록. 에이스의 스파이크가 결정을 짓는 그 순간까지 몇 번이라도, 몇 십번이라도.
소년의 두 팔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자잘한 상처들이 생겨났다. 바닥에 뛰어들어 공을 걷어 올리느라 온 몸에 상처가 새겨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소년은 리베로니까. 스파이커들이 마음 놓고 스파이크를 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리베로라는 단어가 가진 그 수수한 울림에 소년은 순수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등은 작지만 거대하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