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garden

검은 밤이 내려앉았다. 고요한 밤을 여는 올빼미의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마법 속에서 소녀는 천천히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소녀가 이불 속에 몸을 잔뜩 움츠렸을 때 피처럼 붉은 잠옷 자락이 이불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빛 한 조각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 웅크린 소녀는 천천히 되뇌었다. 이 잔혹한 밤이 얼른 지나가길 빌면서.


소녀는 기묘한 부유감에 눈을 떴다. 웅크리고 있던 몸이 무색하게 소녀는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아니, 그것은 하늘이 아닐지도 몰랐다. 소녀는 자신의 몸을 볼 수 있었지만, 주변은 온통 까맸다. 낙하하는 듯하면서도 가만히 떠 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에 덜덜 떨면서 소녀는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던 팔과 다리를 추슬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소녀는 그저 기도했다. 홀로 빛나는 검은 세상에서 소녀는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할 새도 없이 눈을 꾹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 바라본 세상은 두 가지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검은 하늘과 하얀 땅 그리고 하얀 나무. 소녀의 손에 걸리는 머리카락마저도 까맣던 본연의 색을 읽고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숲에서 흘러나온 빛이 소녀의 하얀 머리칼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며 존재감을 과시할 때 소녀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여긴 어디지?"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목소리에 소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 자신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다른 이의 목소리가 섞인 듯한 음색이 거슬렸다.


"이곳은 하얀 숲이야. 넌 어디서 왔니. 붉은 아이야."


의문을 품고 있음에도 조금의 높낮이가 없는 말소리에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새하얀 그 숲에서 한 마리의 늑대가 밤을 품은 눈을 빛내며 걸어 나왔다. 포식자의 위치에 선 동물의 등장에 소녀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자 늑대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아니, 휜 것처럼 보였다.


"두려워하지 말렴. 붉은 인간의 아이야."


소녀는 초조한 몸짓으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 숲에서 색을 완전히 잃지 않은 아이는 처음 보는구나."


소녀는 그제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목에서 찰랑거렸어야 할 피처럼 붉은 잠옷은 발까지 가릴 정도로 긴 망토 자락이 되어 소녀를 감싸고 있었다.


"눈이 오는구나."


하나둘씩 땅으로 내려앉는 눈송이에 늑대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울 듯한 소녀의 목소리에 늑대가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밤이 두렵니. 아이야?"


미미하게 온기를 품은 늑대의 말에 소녀가 입을 열었다. 외로워, 아주 작게 새어나와 눈송이에 파묻혀 대지에 잠겨드는 말에 늑대가 다시 한 번 둥글게 웃었다.


"이 숲 너머로 가렴. 밤을 건너면 더는 너에게 장애가 되지 않을 거야."


하얀 숲 사이로 난 길을 바라보며 늑대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나와 함께 밤을 걸어 주겠니?"


어느새 두려움을 잊었는지, 아니면 혼자 걷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길이였는지 소녀가 작게 속삭였다.


"좋아, 붉은 아이야. 하지만 그전에 후드를 쓰는 것이 좋겠구나."


온기를 품고 내려앉는 말에 소녀가 후드를 매만졌다.


한참을 소녀와 발맞추어 걷던 늑대가 멈춰 섰다.


"?"


의문을 담아 바라보는 소녀에게 늑대가 미소 지었다.


"하늘을 보렴, 아이야."


늑대의 눈이 향한 새하얀 하늘에는 새하얀 달이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검은 하늘에 떠 있는 새하얀 달은 그 극명한 대비에 더욱 도드라져 소녀에게 다가왔다.


"보렴, 아이야. 어둡기에 찬란하게 빛나는 저 달을."


소녀의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작게 떨렸다.


"두려워하지 말렴.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단다. 저 초승달은 아주 천천히 차올라 둥근 원이 되고 다시 천천히 저를 비워내겠지."


천천히 안정되는 소녀를 바라보며 늑대가 천천히 주저앉았다.


"가렴. 너의 뒤를 지켜봐 주마. 가거라, 붉은 인간의 아이야."


소녀는 천천히 한발을 내디뎠다.


"잊지 말렴. 어둡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들은 많단다. 외로움에 눈을 돌리지 말렴. 외로움에 네게 있는 것들을 무시하지 말렴."

"…안…녕."


천천히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를 보며 늑대가 느긋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네가 가는 길에 축복이 함께하길, 작은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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