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꽃이 소름이 돋도록 아스라한데 나는 어디를 걷고 있는가? 비틀어져 바스러져 버린 꿈이 이토록 가여운데 나는 무엇을 꾸고 있는가? 모두가 비난하거늘 나는 걷고 있구나.
세상의 빛이 찬란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무한한 줄기로서 이어지는 빛이 소름끼쳤다. 덜덜 떨리는 손끝이 전해오는 차가운 기운이 뇌를 잠식하는 것만 같았다. 유리창이 킬킬대며 비웃었다. 엉망이 된 방안, 널브러져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못한 수많은 쓰레기들 그리고 그 속에 서있는 나. 부서지고 망가져 낄낄대는 인형같이 그렇게 버려져있는 나를, 이야기가 되지 못한 종이들을 비웃었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어리석게도 세상이 말하는 것들을 무시하며 살아왔기에 왜 나를 비웃느냐고 물을 자격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저 유리창이 발산하는 차가운 기운에 벌벌 떨며 찬란하던 과거를, 꿈을 꾸며 그것에 취했던 어리석은 나날을 후회할 뿐이었다. 겁 없이 이리저리 제 주제를 모르고 날뛰던 천방지축은 죽었다. 이곳에 남은 것은 세상에 벌벌 떨고, 타인의 눈초리에 나를 숨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끄러워지던 부모님의 손이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으로 희미하게 남아 나의 눈을 가린다. 유리창에 희뿌연 김이 엉겨 붙는다.
분명히 잘 할 수 있노라 소리를 지르던 기억이 선명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끝없이 써내려가던 내가 여기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힐끔대며 훔쳐보는 유리창이 나와 세상을 유리시키는 것만 같이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소리를 높이던, 비틀거리고 아슬아슬하지만 끝없이 달려가던,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끝없이 외치던 나는 더 이상 없지만 아직도 꿈은 살아있다. 이 꿈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패기롭게 외치던 나는 더 이상 없고, 내가 찢어져 버려진 우산과 다름없음을, 아니 그것보다 못함을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펜을 들고 종이에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나는 꿈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적힌 종이가 눈이 아릴 정도로 하얗다.
난장이가 하늘을 걸을 거라고, 장님이 무지개를 볼 거라고, 고아가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을 거라고, 불효자가 시간을 되돌릴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외침이지만.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꾸는 꿈이고, 벙어리들의 노래하겠다는,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해도 좋을, 미친 자들의 몽상이라고 손가락질할 그런 꿈이라도, 그런 소망이라도 품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중얼거리는 내가. 이제는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지금은 비틀거리고 어쩌면 버림받은 꿈을 꾸고 있지만 그 꿈이 있기에 나는 살고 그 꿈을 위해 죽을 거라고 말하던 내가 아직은 존재하고 있기에.
차가운 유리창이 전해오는 차가운 기운이 뇌를 얼려버릴 지라도 아직은 내가 하고픈 이야기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속삭임이 남아있기에. 나는 이 꿈에 죽고 살 거야. 아직은 그렇게나마 말 할 수 있다. 유리창 너머로 대지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꿈을 위해 살고 꿈을 위해 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