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garden

겨울이 지났다. 천천히 다가오는 봄이 너무도 두려웠다. 도망치고 싶다. 오지 말았으면 한다. 짙은 봄 그림자가, 천천히 주변에 드리우기 시작하는 봄의 온기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확연히 부드러워진 날씨도, 전처럼 서있는 것만으로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던 바람도 잠잠해지고 있었다. 다 거짓이면 좋겠다. 진득하게 피부를 따라 흐르던 땀이 바람에 날려가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모든 것은 거짓말과 비슷했다. 소년은 배구를 사랑했고, 배구가 즐거웠다. 후쿠로다니라는 이 집단이 사랑스러웠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고뭉치 선배의 뒷바라지를 할리도 없었고 부부장을 할리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할까. 소년은 천천히 손가락을 매만지며 저 멀리서 날뛰고 있는 부장을, 그리고 잠시 후면 더 이상 부장이 아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기운차던 사람.



“아카아시! 토스 올려줘!”

“곧 은퇴식입니다만.”

“그래도 어서!”



안 가면 안 될까요. 억지를 쓰는 선배에게 어울려주기 위해 발을 옮기는 소년의 뒤로 짙은 미련이 발자국을 남겼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곧 사라질 사람. 한없이 가벼운 사람인데도 언제나 든든해서 기꺼이 공을 보낼 수 있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무겁고, 괴로운 것이었다.



“역시 아카아시!”


블로킹을 뛰어 주겠다며 반대쪽 코트에 서있던 선배들의 블록을 뚫고 내리꽂힌 공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바닥을 굴렀다. 다시는 저 절대적인 신뢰를 담은 눈을 볼 수 없는 건가. 소년은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


“보….”

“집합!”


모두를 부르는 감독의 외침에 소년의 입이 가지런히 닫혔다. 의문을 품은 눈길이 닿아오는 것을 느꼈고 알고 있었으나 입을 열 수 없었다. 떠나는 사람도 속이 편치 않을 진데 거기에 자신의 짐까지 올려서야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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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인 은퇴식을 마치고 모두가 빠르게 체육관을 나가기 시작했다. 응원하고 응원 받는 여러 가지로 진정성을 담은 은퇴식은 얼마 전에 다함께 회식을 하며 했으니 딱히 다함께 뭔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Hey, hey, hey!! 아카아시, 오늘 바빠? 약속 있어?!”

“? 아뇨.”

“그럼 공 올려줘! 연습 하다 갈래!”


당연하다는 듯 부딪혀오는 말에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이제 아카아시의 토스 못 받으니까 오늘 실컷 할 거야!”



방방 뛰며 복장을 확인하는 모습이 시리게 틀어박혔다.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는데 어째서 떠나 보내야하는 걸까. 왜 졸업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가야하는 걸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앞에 선다니,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 든든한 등 뒤에 서서 그가 벌이는 일들의 뒷수습을 하며 그렇게 지낼 수는 없을까. 울지 않기 위해 입안의 살을 꾹 씹었다.



“아카아시?”



답 없는 저가 이상했던지 벌써 공을 들고 흔들어대는 모습에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보쿠토상은. 저는 그저 그런 의미에 지나지 않았던 건가요. 씁쓸한 맛이 입안에 가득 맴돌았다. 가지 말아 주세요. 조금 더 함께….



“엑? 아카아시?!”



아까 조금 뛴 탓에 끌어안은 보쿠토상의 몸에서 옅은 땀 냄새가 났다. 둘러 안은 손을 통해 미미하게 전해지는 보쿠토상의 울림에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보쿠토상….”

“헉, 아카아시 울어?! 이것 좀 풀어봐!”



가지 말아주세요. 저랑 조금 더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지탱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지탱하는 건 당신이었나 봅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수 없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



“아카아시….”



축축하게 젖어드는 어깨덕분에 보쿠토는 언제나 어른스럽던 후배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너는 2학년이고 나는 3학년일까. 조금 더 너의 토스를 받고, 조금 더 너의 에이스이고 싶은데. 말을 고를 수 없어 연신 아카아시의 이름만 주워 삼키던 보쿠토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입을 다물라던 시로후쿠의 충고를 떠올리며 그냥 입을 다물었다.



‘조금 더 아카아시와 배구를 하고 싶어.’

‘조금만 더 보쿠토상과 배구를 하고 싶어’



이루어질 길이 없는 소망이 그저 서로에게 기대어 천천히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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