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garden

너의 존재는 낯설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 센스도 재능도 가지고 있으면서 시큰둥하기만 네가 싫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점도 그리지 않고 시작된 네가 이렇게나 커져있을지 몰랐다. 외면하고 지나가는 네가 이렇게나 나를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정말 상상도 못했어.


*


손 안에 있는 배구공이 사랑스러웠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내 실력을 질투해서 나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들이는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쏟아 부은 시간은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그랬다. 다른 모두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이 두 손에, 품에 안긴 공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


네가 좋았다. 나와는 다르게 유연하게 스며드는 네가 좋았다. 타고난 것을 갈고 닦지 않는 너는 조금 싫었지만 그래도 눈이 갔다. 왜일까.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노력은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는 왜 눈에 들어왔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너를 눈에 담고 있었다. 배구로만 가득 차 있던 마음에 너를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너는 그렇게 내 속에 스며들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


어께에 놓인 손이 자게 떨리고 있었다. 코끝에 닿는 네 숨에서 단내가 났다. 물컹하고 조금은 메마른 입술이 내 입술과 마주했다. 축축한 혀가 슬그머니 벌려진 입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살짝 떨어지는 입술이 너무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너의 소매를 그러잡았을 때, 너의 무감각한 눈동자에 나는 그저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너는 아니구나,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는 항상 매정했다. 돌아보는 것도, 시선을 주는 것도 나였다. 내가 가진 것은 손에 들린 배구공뿐인데 너는 언제나 다른 녀석들과 곧잘 어울렸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는 티를 내기 싫었다. 그래서 조금 더 필사적으로 선배를 쫓아다녔을 지도 모른다. 싫어하시는 것이 뻔히 보였지만 선배가, 오이카와상이 팀원들과 섞여드는 것이 부러워서. 선배의 플레이 스타일은 배울 수 없지만 내가 그 서브를 배운다면, 조금 더 잘 섞여들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


“읏.”

내 몸을 바라보는 네 눈길이 차가웠다. 너의 그 차디찬 눈에도 달아오르는 내가 멍청했다. 나는 이렇게나 너를 보고 있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순간 네 입술이 입술 위를 스쳤다. 절실했다. 장난스럽게, 나를 놀리듯 스쳐 지나가고 있음에도 그것에 따라붙을 정도로. 그리고 뒤이어 네 손에 잡힌 중심에 찾아드는 고통에 상처받고, 고통을 내뱉은 나를 살살 쓰다듬어주는 것에 위로받았다.


*


좋아해.

“…….”

문득 그 인적 드문 복도에서 마주친 네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직도 나는 너를 담고 있는데 너는 아닌 것 같았다. 나 같은 것은 다 털어냈다는 듯, 그렇게 스쳐 지나가버리는 너에게 나는 새삼스럽게 상처받았다. 그래, 그날. 너희들이 내 토스를 거부한 날 산산조각 났으면서 왜 아직도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나.


*


복도 끝에서 나를 부르는 선배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떠난 길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까맣고 주황색의 유니폼이, 새하얀 색으로 수놓은 학교이름이 처음으로 무거웠다. 네가 입고 있던 새하얀 색과 민트색이 어우러진 옷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상상보다 더 잘 어울리는 옷에 만약 내가 그 옷을 입고 있었더라면, 하고 상상한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어그러진 얼굴을 한 나. 여전히 소외된 나. 적개심으로 가득한 곳에서 아파하는 나. 돌아봐주지 않는 너를 그저 바라보는 나. 쿠니미, 네게 나는 도대체 뭐야?


*


흐르는 눈물이 뜨겁다. 버거울 만큼 달아오른 몸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 서있는 것이 너무도 버겁다. 패배라는 것은,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닿지 못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아프다. 코트 너머 서있는 네가 낯설다. 쿠니미. 너는 그렇게나 멀쩡한데, 나는 왜 아직도 이런 걸까.


*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만약에 내가 너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와 똑같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패배를 곱씹으며 다음의 승리를 다짐하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있잖아, 쿠니미. 우리가 한 것이 정말 사랑이 맞았을까?


*


나는 아직도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것이 분명해. 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분명히 네가 좋았다. 배구만큼이나. 흐릿했던 우리의 시작이 충분할 정도로 나는 네가 좋았다. 끝조차도 흐릿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내 몸에 닿았던 네 체온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그것은 꿈이 아니다. 괜찮아. 네가 나에게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이제는 그리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


나는 괜찮아. 너는 분명 괜찮겠지. 아직 흐릿하고 모호하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너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과거의 나는 이렇게나 선명한데 지금의 나는 떠오르지 않는다. 선명한 것은 검은 옷자락과 나를 질투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있잖아, 쿠니미. 과거의 나는 별로 신뢰받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과거에는 그렇게 미칠 듯이 궁금해서 더 배구에 매달렸는데 지금은 즐거운 것 같아.


그러니까 네게 있어서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더라고, 괜찮을 것 같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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