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봄바람과 봄볕이 달고도 따뜻했다. 문득 창밖을 본 쇼는 쏟아지는 벚꽃 비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TV를 보고 있던 베라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와 시선을 맞췄다. 가만히 이어지는 그 시선이 서로에게 닿을 즈음, 베라가 작게 속삭였다.
“좋아해, 쇼.”
손에 닿아오는 작은 온기가 너무도 달콤했다.
“……나도요….”
소년의 중얼거림의 끄트머리가 흐릿하게 흩어졌다. 그 짧은 한마디가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헛기침하며 고개를 쌩 돌려버리는 쇼를 보며 베라가 달콤하게, 사랑스러운 이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창을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갓 돋아난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며 그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외출했던 쇼가 사 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닮은 색 아이스크림이 담긴 컵을 한참 들여다보던 베라가 작은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떴다.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쇼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슬금 시선을 돌렸다가도 다시 그녀에게로 힐끔 시선을 돌렸다.
“어, 얼른 먹어요.”
녹아버리니까…. 우물거리는 소년의 말에 베라는 정말 그 잠깐 사이 물기가 비치는 스푼 위의 아이스크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입속에 넣었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입안 가득 차오르는 시원함과 달콤함에 베라가 살짝 떨었다.
“맛 없….”
그런 그녀의 반응에 혹시나 그녀가 싫어하는 건지 시무룩해지던 소년이 뒤이어 흘러나오는 감탄과 기쁨에 파드득 고개를 들었다.
“맛있어! 고마워, 쇼!”
만개하는 베라의 미소에 쇼가 별다른 답도 못 한 채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베라가 아이스크림을 살짝 떠서 쇼에게 내밀었다.
“쇼! 쇼도 먹을래?”
그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호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휘어지는 베라의 눈을 멍하니 보던 소년이 파드득 떨며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베라가 생각나서 사 온 거니까요!”
괜찮다며 파드득거리는 소년에 눈을 살짝 크게 떴던 베라가 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부드럽게 웃었다.
“응. 고마워, 쇼. 잘 먹을게.”
소리를 내어 답할 정신도 없는 듯 뺨을 붉히고 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소년에 베라는 스푼 위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닮은 아이스크림과 소년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좋아해, 쇼.”
정말. 마지막 말을 아이스크림과 함께 입안에서 굴리며 그녀는 행복하게 웃었다.
언제나처럼 식사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쇼를 베라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 키 큰 소년은 그녀가 아는 그 누구보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말랑해서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가 해준 것 인만큼 모양이 조금 망가져도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맛이 좋을 터인데도 얼굴을 굳히며 집중하는 것도, 말끔하게 계란을 말고 기뻐하는 표정도 좋았다. 완성된 계란말이를 도마에 옮겨 조심조심 칼로 잘라내는 모습이 퍽 좋아서 베라는 언제나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좋아해, 쇼.”
정말. 몇 번이고 반복되는 고백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라는 그녀가 감정을 속삭인 후에 언제나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하던 일을 재촉할 소년이 푹 고개를 숙였다. 멈춰버린 소년의 움직임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당황한 베라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즈음 소년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되물었다.
“진짜요?”
처음 본 소년의 모습에 베라가 연신 눈만 깜박였다.
“응?”
“좋아한다는 그 말이요. 정말이에요?”
울 것 같은 소년의 얼굴에 베라가 고개를 갸웃하다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달콤한 향을 품은 그 미소를 그대로 소리 내어 말하는 그 감정이 소년에게 닿아 톡하고 터졌다.
“응. 정말. 정말 좋아해.”
쇼. 나지막한, 하지만 분명한 베라의 말에 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진짜로요? 제가 착각하는 거 아니에요? 뽀뽀해도 싫지 않은 ‘좋아’인….”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쇼의 말에 베라가 꺄르륵 웃으며 답했다.
“진짜인걸? 항상 말했잖아. 나는 쇼가 정말, 정말 좋아.”
포근하게 닿아오는 달콤한 고백에 쇼는 줄곧 저 혼자만의 착각이라 믿으며 굳게 범람하는 감정을 담아둔 상자가 펑, 하고 터지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처럼 똑같은 말이었는데 왜 이렇게….
“그, 그럼 손잡아도 돼요?”
터져버렸을까. 쇼의 안도, 밖도 감당할 수 없는 행복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응, 얼마든지.”
손에 닿는 베라의 온기에 쇼의 눈시울이 넘치는 기쁨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쇼의 큰 손 위에 올려진 베라의 작은 손이 천천히 얽혔다. 두 개의 손안에 담긴 공기가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감정 같아서 쇼는 빈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연신 쓸어내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뽀뽀해도 돼요?”
“응.”
그런 쇼의 얼굴을 바라보던 베라가 화사하게 웃으며 쇼의 뺨에 입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과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얽혀 달아오른 뺨이 부드럽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아….”
쇼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자 베라의 웃음소리가 데구르륵 굴러떨어졌다.
“매일 매일 말했지만, 항상 좋아하고 있어, 쇼.”
웃음기로 둥글게 휘는 베라의 그 얼굴이 꿈만 같아서 쇼는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은 순간 속에서 쇼는 범람하는 행복과 기쁨 속에 서 있었다.
쇼로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눈을 뜨면 사라져버릴 꿈일까 두렵기까지 했다. 쇼는 손에 담긴 그녀의 작은 손과 바로 옆에, 온기가 전해질 정도로 가까이 앉은 베라를 믿을 수 없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쇼와 마주 잡지 않은 손으로 열심히 쇼가 해준 음식들을 집어 먹던 베라가 문득 뺨에 닿는 시선에 눈을 들었다가 마주친 쇼의 눈을 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맛있어, 쇼.”
그녀와 함께 살게 된 후 항상 듣는 말이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듣게 되니 또 새로웠다.
“아.”
입을 벌리는 시늉을 하는 베라에 저도 모르게 쇼가 입을 열자 베라가 계란말이 하나를 그의 입속에 쏙 집어넣었다.
“쇼가 만든 거라서 정말 맛있지, 쇼?”
상냥한 그 말에 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쇼?”
알 수 없는 그의 반응에 놀라기도 잠시, 갑작스럽게 끌어안아 오는 쇼에 베라는 꺄르륵 웃으며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진짜 진짜 좋아해요, 베라.”
“나도 정말 정말 좋아해, 쇼.”
마주 안은 품속에 담긴 온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