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garden

 감정이라는 것은 의외로 숨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캡틴이라는 위치에 서있었고 모두를 보살펴야하는 입장이었다. 아픈 손가락같이 구는 놈에게는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부드럽게 달래기도 해야 했으며 잘 하는 녀석에게는 더 잘하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아무런 걱정 없이 애정을 드러내고 때로는 편애할 수 있었다. 성실하고 착한 후배라는 미명 하에, 너희들도 예쁨 받고 싶으면 이렇게 좀 해보라는 좋은 예시로.


*

 

 어느새 체육관 안에서 들리던 신발들의 마찰음이 점점 잦아들어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규 연습은 끝난 지 오래건만 저들끼리 승부를 내기 위해 1:1을 한다거나 슛을 연습해야한다는 이유로 남아있는 녀석들이 꽤 되는 터였다. 한 두 사람이 내고 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천천히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새파란 하늘에 느긋하게 흘러가던 구름이 지나가던 바람을 만나 기묘하게 뒤틀렸다. 한참을 치켜들고 있어 시려오는 눈을 무시하고 새파란 하늘 사이로 스며드는 노을의 붉은 흔적과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하는 구름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모래가 밟히는 소리에 천천히 옆으로 흘러내렸다.


 “캡틴.”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붉은 머리가 옅은 바람에 휘날렸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시선을 돌린 그가 힐끗 소년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두 눈에 담긴 소년에 마음 속 깊이 짓밟아둔 마음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틀어막으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니지무라 선배라고 부르라니까.”

 아카시. 평소와는 달리 느긋한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기울인 아카아시의 머리카락을 거친 바람이 휘젓고 지나갔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가 거슬리는지 손을 들어 정리하려는 것을 니지무라가 막아섰다.

 “?”

 선명한,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니지무라는 가볍게 무시하곤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혹시나 한 가닥이라도 꼬여 끊어질까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니지무라의 손을 아카아시는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여동생이 있어서 아는데 말이야, 머리카락은 소중히 해야 하는 거라고 하더라.”

 괜히 쓸모없는 말을 꺼낸 니지무라가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를 보며 작게 입맛을 다셨다. 손끝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카시의 머리카락의 잔흔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깊은 곳에서 나가겠다고 발광하는 감정을 거칠게 짓밟는 니지무라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시는 딱히 이러나저러나 별로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무덤덤한 행동에 괜히 혀를 찬 니지무라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래서 왜 불렀냐?”

 “….”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슬쩍 구겨지는 아카시의 미간을 손끝으로 살살 매만지던 니지무라가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비어있던 손을 주머니에 넣고 뭔가를 한참 찾던 그는 결국 저지와 바지의 주머니까지 뒤집어본 후에야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아카시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달 사항이 있었는데, 지금 없네. 우리 반에 가자.”

 거긴 있겠지. 대책 없는 말을 휙 하니 내뱉곤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는 니지무라의 뒷모습에 아카시가 입을 열었다.

 “급한 건가요?”

 그의 말에 니지무라가 고개만 살짝 뒤로 돌려 난처한 미소를 흘렸다. 그 얼굴이 의미하는 바를 금세 알아챈 아카시가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뒤를 쫓았다.


*


 “아, 진짜 내가 이걸 어디다 뒀냐.”

 책상 서랍이며 사물함을 하나하나 뒤져대는 니지무라의 등을 아카시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가 자신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부원들이야 대충 자신을 편애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나 보지만 당사자인 아카시로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챘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단순히 예의바르고 성실한 편인 후배에 대한 캡틴의 편애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애정을 담고 마주쳐오면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괴짜지만 성실한 미도리마에 대한 태도와 비교하면 그것은 극명했다. 딱히 상관없나. 니지무라가 애용하는 무지개색 리스트 밴드와 무지개가 의미하는 바를 떠올린 아카시는 생각을 관두고 니지무라를 쳐다봤다.

 “집에 있나본데…?”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라 대체 이 선배가 무슨 생각으로 답지 않은 수선을 떠는 건지였으니까.


 자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큼성큼 나가버리는 아카시의 매정한 뒷모습을 니지무라가 핥듯이 바라봤다. 똑똑하니 분명히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저를 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모습에 또다시 형태를 갖지 못한 감정이 쿵쾅거렸다.


*


 얼떨결에 니지무라의 집까지 끌려온 아카시는 짜증을 담아 머리를 털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생각 외로 단정한 방안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카시는 문득 보이는 이질적인 붉은 상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볼까. 기묘한 충동이 그의 안에서 술렁였다.

 ‘잠시 마실 것 좀 가져 올게.’

 그를 방안에 두고 나가면서 니지무라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건 적당히 구경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경해도 된다는 말이겠지. 홀로, 저 좋을 대로 결론지은 아카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위,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붉은 상자를 끄집어 내렸다.


*


 “아무 거나 상관없다 길래 녹차 가….”

 쟁반을 받쳐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던 니지무라는 쟁반을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잔이 뜨거운 녹차를 방바닥에 내뱉으며 뒹굴었다. 아카아시의 발 근처에는 온갖 사진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평범하게는 교복을 입은 옷부터 심지어 벗은 몸까지. 부원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배경속의 사진에 맑은 빛으로 마주쳐오던 아카시의 눈이 경멸과 혐오로 뒤범벅되었다. 아무런 변명도, 말도 없이 서 있는 그를 지나쳐 현관으로 향하는 등을 바라보는 니지무라의 시선이 진득한 탐욕과 독점, 그리고 비틀린 애정으로 짙게 가라앉았다.




W. Liberia Log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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