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인은 게으르다. 아니, 매사에 의욕이 없다. 뭐든지 대충대충. 게으르다는 것과 의욕이 없다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면 그녀는 의욕이 없다. 게으르지는 않다. 계속해서 뭔가를 저지르고 또 해나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실이다.
주인의 아침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시작된다. 그녀의 기상 시간은 늘 비슷하다. 알람도 없이 어느 순간 눈을 뜨고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켠다. 이불 속의 온기에 머뭇거리기도 하련만 그녀는 금방 이불을 벗어나 침대를 정리한다. 깔끔하게 접힌 이불을 팡팡 치고는 창을 열고 밖을 잠시 내다본다. 그리고는 옷장을 열어 옷을 꺼내곤 욕실로 사라진다. 평범하고 또 평범한 아침은 그렇게 시작된다.
주인은 따뜻한 물을 좋아한다. 욕실에 슬쩍 들어가 보면 자욱한 김에 숨이 막히건만 주인은 여유롭게 샤워기 아래에 서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주인의 샤워는 굉장히 긴 시간을 요구한다. 따뜻한 물 아래에서 잠을 깨우고 나온 주인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는 방으로 돌아온다. 방으로 돌아온 주인은 화장대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한다. 그녀는 화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곧잘 스킨과 로션만 바르고 외출하기도 한다. 정말 드물게 그녀는 선크림을 바르고 비비를 바르고 색조화장을 한다. 입술에는 언제나 틴트. 그녀는 매일 입술색이 진한 것을 불평한다. 그리곤 머리를 도끼 빗으로 정수리 부근만 빗은 후 헤어 오일을 손에 덜어내 머리를 빗어 내린다. 손에 묻는 오일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변하지 않는 일과다. 그 후에 그녀는 풋 오일과 풋 크림을 섞어 발에 바르고 버선을 신는다. 그 기나긴 일과가 끝난 후에야 그녀는 부엌으로 가 아침 식사를 한다.
주인의 아침 식사는 언제나 똑같다. 밥 조금, 반숙으로 익힌 계란 한 장, 김치 조금. 옆에 펼쳐둔 신문의 정치면을 읽으면서 그녀는 천천히 식사한다. 천천히 라고는 하지만 양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식사는 금방 끝이 난다. 이를 닦고 나온 그녀는 책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가장 값싼 생수를 하나 사고 학교에 도착해 수업을 듣고 일을 한 후 귀가한다. 종종 시간이 나면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시화전을 위해 시를 구상한다. 집에 오면 저녁을 먹거나 집안일을 한 뒤에 운동하러 나갔다가 와서 컴퓨터를 잡고 과제를 하다가 잠이 든다.
주인의 일상은 지독히도 닮은 나날의 연속이다. 변수라고는 점심 메뉴가 바뀌는 것과 저녁을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저녁에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의 수정도. 특별한 것도 없고 바뀌는 것도 없는 그 일상 속에서 그녀는 늘 의욕 없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