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달이 있기에 그 빛을 인정받습니다. 빛은 그림자가 있기에 그 빛을 인정받습니다. 물은 불이 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공기는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기에 그 존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의 빛이고, 나의 태양이며, 나의 구세주입니다. 그런 당신께, 말합니다.
태양이 그 찬란한 빛을 대지에 선사하던 날,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홀로 차가운 대지에 내쳐진 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하늘, 저 너머의 고귀한 신의 품으로 돌아갔을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스물일곱. 결코 작은 나이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가 지니는 중요성,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입양아. 그 무거운 굴레를 뒤집어쓰고 나는 스물여섯 해를 살았다. 그리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이날. 나는 스물일곱 번째의 해를 선물 받고, 부모님을 빼앗겼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우리의 아이란다.‘
‘태로 낳지 않았다고 하여 네가 우리의 아이가 아닌 것은 아니지.’
‘너는 자랑스러운 나의 아들이다!’
입양되기에는 꽤나 많은 나이에 입양된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끝없이 귓가에 속삭이는 양부모님의 말에 나는 떨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고아로 살아왔고, 나이가 많을수록 파양당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뼈에 사무치도록 충분히.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정을 붙이지 않으려는 나에게 끝없이 다가왔고, 끝없이 속삭였다. 너는 우리의 아이다. 그것은 마법의 단어였다.
‘예쁘지?’
‘무슨 꽃이에요?’
‘음~ 분홍 장미란다. 이 꽃의 꽃말은 맹세, 단순,그리고 행복한 사랑이란다.’
어머니의 손 안에서 아름답게 꾸며지는 꽃이 보기 좋았다.
‘언젠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타난다면- 이 꽃을 선물하렴. 나는 네가 붉은 장미와 같은 불타는 사랑도 좋고, 초록 장미처럼 고귀한 사랑도 좋고, 보라 장미처럼 영원한 사랑도 좋지만, 행복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구나. 행복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단다. 보렴, 세 잎 클로버의 꽃말도 행복이 아니니?’
‘세 잎 클로버는 흔해요. 네잎 클로버가 좋은 거잖아요.’
‘오, 우리 아들. 행복은 흔하기에 중요한 거란다.행운은 행복사이에 피어나는 아주 드문 거지. 그것에 목이 메여 너의 주변에 가득한 행복을 외면하지 마렴.’
어머니가 손에 쥐여 주는 분홍색의 장미가 무겁게 느껴졌다. 중요한 것. 행복.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은 싸늘했다.
“어머니, 언젠가 분홍색의 장미를 선물할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과 함께 장미를 드리러 올게요.”
그 약속은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 사라졌다. 그녀가 나의 눈앞에 나타나던 그 날까지. 아주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그녀는 아주 천천히 나의 심장 속으로 들어왔다.그녀는 삭막한 나의 시간에 빛을 가져다주었다.그녀는 삭막한 나의 세계에 빛을 가져다주었다.까맣게 불타오르던 세계에 비가 내렸다. 그녀는 구세주였다. 아름다운 미소, 그리고 마음씨. 그녀는 다친 사람을 어루만질 줄 알았다. 우리는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갔다. 때론 내가 두려움에 도망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삭막하던 생활에 싹이 텄다.
긴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무덤가에 섰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무덤은 마구 자라난 풀들로 인해 흉측했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무덤 앞에 분홍색의 장미 다발을 대려놓았다. 오십 두 송이의 장미.
‘아들아, 장미에는 송이마다 뜻이 있단다. 오십 두 송이는 오늘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라는 뜻이야.’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어머니, 오늘 그녀에게 장미를 주었어요. 청혼을 했어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분홍 장미를 주었어요. 그녀는 받아들여 주었어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날 이예요. 다음에는 그녀와 함께 올게요. 어머니 마음에도 쏙 들거예요.”
‘이게 뭐야? 분홍 장미?’
‘나랑 결혼해 줄래?’
‘에? 빨간 장미도 아니고 분홍 장미로 고백하는 거?’
그녀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에 또 올게요. 어머니.”
“태양은 달이 있기에 그 빛을 인정받고, 빛은 그림자가 있기에 그 빛을 인정받아. 물은 불이 있기에 그 가치가 빛나고 공기는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기에 중요함을 인정받지. 나는 네가 존재하기에 그 존재를 허락 받았음이 틀림없어. 너를 사랑해. 너는 나의 빛이고, 나의 태양이며, 나의 구세주야. 그런 너에게 말할게. 나는 붉은 장미처럼 타오르는 사랑을 너에게 줄 수 없고, 초록 장미처럼 고귀한 사랑을 줄 수도 없어. 보랏빛 장미처럼 영원한 사랑도 줄 수 없지. 하지만 이것 단 하나는 맹세할게. 나는 그 분홍장미가 지닌 의미처럼, 행복한 사랑을 너에게 줄게. 삭막한 나의 세상에 빛이 되어준 너에게 배운 그 사랑을, 이제는 내가 너에게 줄게. 그러니까 나와 결혼해 주겠어?”